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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다시 볼까?

221b_bakerst 2024. 10. 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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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는 인간의 삶, 죽음, 그리고 기계 문명의 딜레마를 심오하게 탐구한 마츠모토 레이지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다수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레이징버스’라 불리는 하나의 우주관을 형성하고 있다. 레이징버스는 그 자체로 독창적인 세계관이자, 미래의 우주 속에서 인간성과 기계의 갈등을 주제로 한 일종의 철학적 실험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은하철도 999'는 이 레이징버스 세계관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이 갈등과 모험을 통해 성숙해가는 이야기를 그리며, 그 안에 담긴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이 글에서는 ‘은하철도 999’와 그 속에서 얽혀 있는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여정을 통해 마츠모토 레이지가 전하고자 한 깊은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

 

( 레이징버스(Leijiverse) :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들이 공유하는 거대한 우주 세계관. 이 용어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이름 ‘레이지’와 ‘유니버스’를 결합한 것인데 이 세계관의 핵심은 '은하철도999'이며, 하록, 토치로, 에메랄다스 같은 캐릭터들이 여러 작품에서 반복 등장하거나 유사한 역할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개별 작품들은 원래 독립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이후 하나의 연합된 세계관으로 묶이며 크로스오버 요소가 추가되었다. )

우주적 서사와 기계 문명의 탄생 배경: 라메탈의 운명

‘은하철도 999’의 주요 배경인 라메탈 행성은 인간이 거주하기에는 지극히 가혹한 환경을 가진 별이다. 라메탈은 타원형 공전 궤도와 암흑 갱성 라의 중력으로 인해 태양 궤도를 벗어나면서 극한의 추위를 겪게 되었고, 800년간 겨울이 이어지는 혹독한 행성이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왕 프로메슘은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고자 여러 대책을 마련하게 되는데, 모든 시도가 실패하면서 최후의 방법으로 기계 인간으로의 전환이라는 계획을 실행하게 된다. 이는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안정된 삶을 보장할 것처럼 보였지만, 기계 인간 계획은 인간성을 희생한 삶으로 이끌며, 감정과 자유 의지가 억압된 차가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의미했다.

 

이 계획을 추진한 과학자 하드기어는 처음부터 라메탈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의 인간을 기계화하여 자신의 계획을 확장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육체를 기계로 대체하여 완벽한 존재로 변모시키고, 기계화된 존재들이 이루는 조화로운 세계를 꿈꾸었으나, 이는 결국 인간성을 상실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여왕 프로메슘도 하드기어의 계획에 동화되고, 라메탈은 기계 제국으로 변모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냉혹한 사회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마츠모토 레이지는 기계 문명과 인간성의 갈등을 극적으로 그려내며, 기계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과 그로 인한 부작용을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메텔과 에메랄다스의 비극적 운명과 복수의 여정

기계 제국의 여왕이 된 프로메슘에게서 탈출한 그녀의 두 딸, 메텔과 에메랄다스는 프로메슘의 기계화 계획에 반발하며 라메탈을 떠난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계화된 어머니와 맞서 싸우고자 하는데, 메텔은 은하철도 999를 타고 기계 제국을 무너뜨릴 복수를 위해 긴 여정을 떠난다. 메텔의 여정은 기계 인간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에 찬 것이었지만, 은하철도 999라는 여행은 그녀에게 인간성과 기계 문명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메텔이 택한 동행자는 소년 테츠로(철이)이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기계 인간이 되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메텔과의 여행을 통해 기계 인간들이 겪는 다양한 삶을 목격하게 되면서 점점 기계화된 삶의 공허함을 깨닫는다. 기계 인간이 된 이들은 모든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나,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해버리고 만다. 철이는 기계 인간들이 더 이상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기계화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되고, 인간의 유한한 삶이 오히려 더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테츠로의 성장과 ‘인간성’이라는 불멸의 가치

테츠로는 여행을 통해 기계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유한한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가치를 찾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모든 이들이 갈망하는 기계 인간이 되어 영원히 살기보다는 짧고도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프로메슘의 기계화 야망을 무너뜨리기 위한 결단을 내린다. 이 결단은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를 넘어선 인류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서, 은하철도 999의 여정을 통해 성장한 그의 성숙한 모습을 상징한다. 그의 선택은 마츠모토 레이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으로, 삶의 본질적인 가치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레이징버스의 통합 세계관과 ‘은하철도 999’의 위치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들이 공유하는 레이징버스라는 세계관은 ‘은하철도 999’를 중심으로 여러 작품이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우주관이다. 레이징버스는 처음부터 기획된 세계관이 아니라, 각각의 독립된 작품들이 서서히 얽히며 확장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연결 구조는 오랜 시간 동안 팬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했으며, 각각의 작품들이 설정이 충돌하는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를 강조하는 공통된 주제를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류의 미래와 문명을 성찰하는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특히 ‘은하철도 999’는 이러한 레이징버스 세계관의 중심으로서,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은하철도 999의 철학적 메시지와 인간의 길

‘은하철도 999’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기계화된 삶을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과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 과연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현대 기술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중요해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기계 인간들이 겪는 공허한 삶은 인간성을 상실한 결과의 비극을 보여주며, 기술이 인간을 얼마나 기계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경고한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드는 이 작품은 인간이 기계로 변하지 않고도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삶의 방향성을 제고하게 한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 사회에 여전한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가 던지는 철학적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은하철도 999’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기술과 문명을 맹신하기보다는, 유한한 삶 속에서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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