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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제 하이닉스를 보고 배워라!

221b_bakerst 2024. 10. 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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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걱정은 흔히 "바보같은 걱정"이라 불린다. 특히 연예인과 재벌의 문제를 두고 걱정하는 것은 대개 애정 어린 염려로 치부되며, 그들의 실패나 어려움에 대한 비판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재벌이 어려움에 처하면 걱정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야 할 일도 많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에서 일시적으로 흔들린다면, 이를 우려할 것이 아니라 경쟁자인 하이닉스가 세계 1위로 도약하는 기회를 환영해야 한다. 변화란 곧 발전의 신호이자 생존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 구조를 살펴보면,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자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략 상품은 메모리 반도체, 그중에서도 DRAM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이닉스가 1위로 올라서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축하해야 할 일이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도 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잃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러한 산업 구조의 변화는 한국 경제가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감정은 남의 실패를 비웃거나, 질투와 시기로 가득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감정은 과거의 공동체 사회에서는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감정이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의 개체화된 사회에서는 생산적인 힘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제는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 훈련이 필요하다. 남의 실패를 기뻐하는 대신, 그들이 성공한 이유를 분석하고 배워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자신도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방(emulation)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성과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공을 이끈 이유와 정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남의 실패를 분석하는 것은 그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알게 해줄 뿐, 그것이 곧바로 성공을 위한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 성공의 본질을 찾아내고 그에 접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이는 수많은 오류를 분석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길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삼성전자가 왜 잘못했는지를 분석하는 대신, 하이닉스가 왜 성공했는지를 깊이 파악하는 것이다. 하이닉스가 오늘날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로 올라설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그 시작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의 ‘빅딜’에서 비롯된다. 당시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강제로 합병되었고, 현대그룹이 경영을 맡았으나 결국 그룹이 무너지고 하이닉스는 부실화되어 은행 관리 체제로 들어갔다. 이는 한국 재벌 체제가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삼성전자만을 남기고 하이닉스를 매각하려 했지만, 하이닉스의 기술진은 마이크론과의 기술 검토 과정에서 그들의 기술이 대단치 않음을 깨달았다. 당시 하이닉스 CEO와 주요 기술자들은 정부에 하이닉스가 지원을 받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력히 호소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이에 따라 하이닉스를 구제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 결정은 하이닉스 기술진의 용기와 결단력 덕분이었다.

하이닉스는 외환은행의 관리 하에 자율 경영을 시작했고, 기술 분야에서는 내부 자율성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항상 자금이 부족했다. 투자를 위해서는 은행을 설득해야 했고, 이를 위해 별도 조직이 운영될 정도였다.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새로운 장비나 팹에 투자하기 전에 기존의 것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의 실력은 자연스럽게 향상되었고, 협력업체와의 기술 교류도 강화되었다.

하이닉스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긴축 경영 속에서도 기술적 자율성을 유지하고, 내부 엔지니어들이 자발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며 성장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이후 하이닉스가 SK에 인수되면서 더 큰 자금과 좋은 근무 조건이 확보되었고, 이는 인재를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SK는 투자금으로 산하 기업을 관리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이는 하이닉스가 국영 기업으로서 쌓아온 방식과 유사했다. 결국 하이닉스는 기술, 조직, 인력 조건을 모두 갖춘 채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승부를 가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한국 재벌 체제는 하이닉스처럼 구조적으로 단단한 기업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다. 하이닉스의 성공은 단순히 재벌 체제가 아닌, 오히려 국영 기업으로서의 자율성과 구조적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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